이준익 감독은 '동주'가 윤동주의 전기 영화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동주'는 윤동주라는 민족 시인을 최초로 영상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지만 단순히 짧았던 스물 여덟해동안 빛났던 미완의 청춘을 연대기 위에 펼쳐내려 한 작품도, 윤동주의 문학 세계에 도취된 감상적인 작품도 아니었다는 점은 영화의 상당히 낯선 이면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가능한 사실에 입각해 철저한 고증을 거쳐 만들어낸 산물이었지만, 깊이를 가늠하지 않으면 실감할 수 없는 영화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는 건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준익 감독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동주' 인터뷰에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윤동주(강하늘 분)와 송몽규(박정민 분)를 통해 일본 군국주의의 모순과 부조리, 부도덕성을 증명하고 싶었다"는 이준익 감독의 말은 연출자 개인의 주관성이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준익 감독은 인터뷰 내내 "두 사람을 통해 증명해낸 것 말고 내가 부여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내면과 마주하고 자아를 성찰한 윤동주라는 개인에게 집중한 것 역시 감독이 증명하고 싶었다고 했던 그 모순과 부조리, 부도덕성을 그려내기 위한 총체적인 과정 중 하나였으리라 짐작됐다.


그것이 우리가 '동주'를 감상주의에 젖어 관람하는 것을 경계했어야 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식민 시대의 상처로 아파만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변별력을 분명하게 갖췄으면 한다는 것이 거장의 바람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영화 '아나키스트'를 기획하고 일제 식민지와 관련한 책 100권 이상을 검토하며 시작된 관심이 오늘의 '동주'를 완성했다. 지난 날, 외화 수입 당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을 계기로 시작된 역사에 대한 거장의 뿌리 깊은, 애정 어린 시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준익 감독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동주' 인터뷰에서 배우 강하늘, 박정민을 캐스팅할 당시를 회상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필모그래피를 보면 쉬이 알 수 있듯 이준익 감독은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이 가장 큰 감독 중 하나다. '동주'는 어떠한 관심이 시발점이 된 작품일까.A.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아나키스트'라는,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작됐을 거다. 그때 당시 책들이나 자료들을 100권 이상을 검토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가 실패하면서 한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윤동주와 송몽규가 어떻게 보면 아주 가까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세대가 아닌가 싶더라.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보다 먼저 살다간 분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됐고, 계속 지속되게 됐다.


Q. 그런 인물들에 집중하기 위해 반드시 윤동주여야 했던 이유가 궁금하다.A. 그것이 꼭 윤동주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그 시대에 강요된 선택을 했던 사람들을 지금, 현재의 시각에서 풀어보고 싶었다. 4년 전 교토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갔다가 일본 도시샤 대학에 있는 윤동주 기념비를 본 적이 있었다. 윤동주가 마지막으로 학교를 다니다가 검거를 당한 곳이다. 후문에 들어서 보니 교정 아래에 기념비가 있더라. 일본 땅에 그런 기념비가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정지용 시인의 시에 나온 압천도 걸어봤다. 70년 전, '여기를 걸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몸으로 느껴보려 했다. 그걸 꼭 영화로 찍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그때였다. 

Q. 총 19회차, 순제작비 5억 원 규모에서 상당한 퀄리티의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사례가 되겠다. 제작비가 흔히 남용되고 있는 현 영화계에서 이준익 감독과 같은 연출자의 경제적인 작품 규모가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다.A. 윤동주라는 인물로 영화를 찍고 싶은데 상업 영화로 찍기에는 불가능한 지점들이 많았다. 일단 시대를 재현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없었다. 사라진 공간들을 다시 만들어내기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흑백 저예산으로 찍어야겠다고 결정했다. 시나리오를 쓴 신연식 감독과 모든 저예산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만들었다.



이준익 감독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동주' 인터뷰에서 윤동주와 함께 송몽규를 등장시킨 이유를 밝혔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영화가 흑백 영화인 이유는 제작비 때문이라고 했지만 윤동주 시인의 흑백 사진이 흑백 영화로 만들게 한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전에 '님은 먼곳에'를 찍을 당시에도 사진 한 장이 이준익 감독에게 큰 영감이 돼준 것으로 알고 있다.A. 우리 어머니, 아버지 시대의 흑백 사진은 누구나 집에 한 장씩 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흑백 사진에 멈춰진 시간 같은 것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 교과서에도 실린 윤동주의 사진을 보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 그가 남겨놓은 시집 안에 있는 시어들이 70년이 지나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는데 우리는 그의 시만큼, 그의 삶을 알고 있는가 자문해보게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런 생각들이 영화를 만들도록 추진력이 돼줬다. 


Q. 송몽규는 윤동주의 내면과 마주하는 것 만큼이나 생경한 인물이었다. 윤동주라는 인물에 홀로 집중하는 것보다 영화적이고도 극적인 느낌이 나지만, 송몽규를 통해 윤동주라는 인물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읽힌다. A. 영화가 할 수 있는 좋은 것들 중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서 사람의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라는 점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동물이다. 누군가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갈텐데 한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은 그와 함께 했던 시간 안에서만 가능하지 않나. 윤동주에게는 수많은 가족이 있었지만 유독 송몽규와 특별했다. 중국 용정이라는, 같은 곳에서 태어나서 후쿠오카 형무소라는, 같은 곳에서 생을 마감한 특별한 관계였다. 두 사람의 비교 가치, 생각의 차이도 있지만 행동의 차이도 있다. 지금의 상황에 대입했을 때 두 인물의 선택이 더 크게 와닿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Q. 윤동주가 지금의 관객에게 시대에 저항한 거창하고 이상적인 위인처럼 비쳐지진 않는다. 인물 개인의 내면에 집중한 덕일 것 같다. A. 모든 영웅과 위인은 후대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가공되는 게 많다. 태어날 때는 영웅과 위인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한 개인으로 태어나지 않았겠나. 그 시대에 순응하면서 살 수도 있는데 굳이 거역하면서 부딪히는 인간들이 영웅이 되고 위인이 되는 거다. 윤동주의 성장 과정을 보면 그는 위인이기 이전에 그저 소심한, 한 개인이다. 거대한 성과를 올린 것만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한 인간으로 버텨내면서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것. 그게 위인이다. 어쩌면 이 시대에서도 많은 젊은이들 중에 위인으로 남을 사람이 누군가 있다는 거다. 100년 후에 우리 주위에 누가 위인으로 남을지 모른다.  




이준익 감독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동주' 인터뷰에서 작품에 주관성을 반영하지 않으려 했다고 털어놨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제작보고회 당시 오늘의 청춘에게 '동주'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이 오갔다. 그때 "감독이 메시지를 알려주는 건 그 자체로 불법"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이 같은 작품이 청춘들에게 반향이 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런 답변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A.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건 중요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그리고 주변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렇게 기록돼 있을 뿐이다. 그때 당시 두 사람을 영화를 통해 증명해낸 것 말고 내가 부여한 것도 없다. 


Q. '연출'이 아니라 '증명'이라 함은.A. 엔딩에 그 이유가 있었다. 우린 늘 그동안 식민지 시대 피해자의 억울함만 강조한다. 그건 반쪽 짜리 애정이다. 가해자의 모순과 가해자의 부도덕성에 대해 우린 잘 연구하지 않았다. 프랑스, 헝가리, 체코 등 유럽은 나치의 피해를 수년동안 받았고 그 전쟁이 끝나고 나서 나치의 파시즘을 철저하게 파헤쳐서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린 일본의 군국주의 아래 30년을 있으면서 억울함만 계속 하소연했다. 그래서 내가 증명이라고 말한 것이다. 

Q. 답변이 다소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흔히 관객들은 우리와 별다를 바 없는 윤동주의 청춘과 그의 내면, 그리고 부끄러움의 미학에 집중할 것이다.A. 우린 대개 윤동주와 송몽규에게만 주목한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을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부도덕성과 모순을 지적해야 하는 게 이 영화의 존재 이유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철저하게 해부하고 파헤칠 필요가 있었다. 윤동주가 반론하고 송몽규가 그 모순에 대해 말하지 않나. 문명국과 비문명국을 나눈 일본의 모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희생에 대해서 말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모순과 부도덕성을 두 인물을 통해 증명해보고 싶었던 거다. 현상에 대한 변별력이 호도되거나 은폐된 상태에서 우린 여전히 피해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정확한 자료와 연구, 그리고 증명이 필요하다. 이 영화도 감상주의에 빠져서 보다보면 본질을 놓칠 수가 있다. 



이준익 감독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동주' 인터뷰에서 역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그런 상위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티켓 파워가 강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싶었던 바람도 있었을까. 유아인이 '동주'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던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A. 유아인이 하고 싶어했다는 건 나로서는 땡큐였다. (웃음) 당시 이미 '사도'를 찍은 직후였거든. 이미 그가 좋은 배우라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윤동주 그대로가 아니라 자칫 대세 유아인의 윤동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저예산 영화와 대세 배우는 상충되는 지점이 있다. 강하늘은 영화 '평양성' 때 함께 했었다. 그 친구가 스무살 때 보여준, 꾸미지 않는, 기술이 인위적이지 않은 연기의 본질을 보여준 것이 인상 깊었다. 황정민이 지난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강하늘과 함께 추천한 배우가 박정민이었는데 그 친구는 '신촌좀비만화'에서 보고 연기를 너무 잘해서 감탄한 적이 있었다. 송몽규 역할의 캐스팅 조건이 있었는데 대중들이 잘 모르는 배우여야 한다는 점, 연기력이 출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송몽규의 발견과 배우의 재발견이 다 함께 맞아야 한다고 봤다. 박정민은 그간 저예산 영화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은, 정말 좋은 배우였다. 


Q. 배우의 훌륭한 열연과 맞물려서 배치한 윤동주의 시도 아름다웠다. A. 시를 단순히 감상에 빠져서 썼다면, 진실되지 않고 관념적인 글에 지나지 않았다면, 윤동주의 시가 지금까지 남아있었을까. 그는 비극적인 시대에서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직면하고 아파했던 사람이었다. '자화상'이라는 시가 클라이맥스인 이유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타자화시키면서 자신의 내면과 직면하지 않았나. 송몽규에 대한 열등 의식이 윤동주 나름의 신념을 지켜낼 수 있도록 했을 거다. 그게 윤동주의 정신을 변질되지 않도록 만들어준 원천이었을 거다. 극 중 정지용 시인이 말하지 않나.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윤동주는 한글을 말살시킨 일제의 조선어 금지 정책이 시행됐던 와중에도 끝까지 한글로 시를 쓴 사람이다. 한번 스스로 생각해보라. 한글을 쓰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당신은 한글을 쓸 수 있는지. 

Q. '동주' 이후에도 저예산 영화 연출에 나설 계획이 있나.A. 이번엔 윤동주라는 위인, 그리고 수준 높은 스태프들과 실력 있는 배우들의 공이 컸다. 난 단지 그런 그들을 모아서 같이 하자고 했을 뿐이다. 이들이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셈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나.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지만 이런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장담은 할 수 없겠지. 하하.


뉴스1스타  장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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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전문 뉴스통신 '뉴스1스타' 입니다.

배우 김선영의 이름이 대중에 각인되기까지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극 무대 위에서 빛나던 그가 영화와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차분하게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과 가장 파장이 맞는 작품을 만났고, 대중의 사랑까지 덤으로 얻었다. 

김선영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로 인해 자신의 이름을 가장 효과적으로 알렸다. 캐릭터 이름 또한 김선영이었으며 자신과 닮은 점이 많은 선영이라는 인물의 서사는 극 안에서 세밀하게 다뤄졌다. 


배우 김선영이 최근 뉴스1스타와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 News1star/권현진 기자


아들 고경표, 어린 딸 김설을 키우는 홀어머니의 이야기는 보통 드라마라면 동정의 시선으로 짧게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김선영의 스토리는 깊은 울림을 주며 내밀하게 펼쳐졌고, 게다가 최무성까지의 러브라인까지 더해져 힘 있게 전개됐다. 어머니이자, 딸이자, 여자 김선영의 이야기는 시청자를 울고 웃고 가슴 뛰게 만들었다. 


"드라마 인기가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수군수군 거릴 때 인기를 실감하죠. 하지만 극 중에서의 스타일과 일상에서의 모습이 다르니까 저라고 확신을 갖는 분들이 많이 없더라고요. 인기는 길면 세 달 적으면 한 달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지나가겠죠."

김선영은 '응팔'과의 만남은 "잊혀지지 않는 필모그라피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연극 무대에만 올랐던 그가 처음 드라마를 시작했을 때 느꼈던 생경함이 지금도 그에게는 생생했다. 

"'호텔킹'이 제 첫 드라마였어요. 드라마는 정말 처음 찍어봤죠. 단역조차 해본 적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카메라도 잘 모르고 현장 용어도 몰라서 적응은 못했어요. 드라마 현장은 막연히 무섭다고 생각했죠."

'응팔'은 드라마에 대한 거부감도, 어려움도 사라지게 했다. 큰 소리 한번 낸 적 없다는 신원호 감독과, 최고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열정을 불태운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 사이에서 김선영은 활어처럼 펄떡였다. 

"처음 감독님, 작가님과 인터뷰하면서 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 덕분에 선영이라는 인물이 저와 더 닮아져간 것 같아요. 저도 선영이처럼 잘 웃고 눈물도 많고 흥도 많거든요. 사람도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거, 춤추는 것도 좋아하죠. 진주처럼 실제 제 딸도 6세였어요. 저를 많이 닮은 인물은 처음이었어요. 연기하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오히려 생소하더라고요. 연기를 하면 나와 다른 인물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는데 저와 너무 닮았으니 헷갈렸죠. 그래도 덕분에 제 이름은 제대로 알린 거 같아죠.(웃음)"


배우 김선영이 최근 뉴스1스타와 만나 tvN '응답하라 1988' 종영소감을 밝혔다. © News1star/ 권현진 기자


김선영이 '응팔'에서 제대로 주목받던 순간은 아무래도 최무성과의 로맨스. 중년의 로맨스가 되레 풋풋하게 다가왔고, 시청자들은 현실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두 사람의 관계에 몰입했다. 


"처음에는 러브라인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만 들었어요. 웬 떡이냐 싶어서 제가 강하게 러브라인 넣어달라고 했죠. 하하. 무성이 오빠가 연기를 너무 훌륭하게 해요. 거기서 케미가 제대로 생긴 거 같아요. 무성이 오빠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였거든요. 나오는 작품도 다 찾아보는 사람이었죠. 실제로도 케미가 좋아요."

'응팔'이 이만큼 사랑받을 거라 예상했냐고 묻자 그는 "당연히 망할 거라 생각했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케이블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인기 있을 거라는 확신마저도 없었다고 단정 지었다. 

"제작진이 3탄은 망할 거라 했어요. 이전 시리즈가 워낙 인기가 있었으니 저도 망할 줄 알았죠. 또 가족 중심의 에피소드로 전개되니까 소소하게 사랑받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큰 기대는 없었죠."

김선영은 '응팔' 속 선영이가 사랑받은 이유에 대해 "누가 했어도 사랑받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아니었을까"라고 확신했다. 그는 "작품이 모든 캐릭터를 안아줬다. 소모되는 인물 없이 끝까지 터치하더라. 제가 복이 많았다"라고 작품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이번 작품으로 김선영은 파마머리에 몸빼를 입은 전형적인 아줌마의 외형을 보여줬다. 하지만 실제 연극 무대에서 그는 입체적이면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아줌마를 연기해서 속상하지 않냐고 하는데 제가 아줌마인데 뭐가 속상하겠어요. 저는 아줌마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있어요. 물론 연극에서는 더 여러 가지 역할을 보여주고 있어요. 사투리도 안쓰고 러브라인도 진하고.(웃음)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만나 한동안 김선영은 '응팔' 속 선영이에게 푹 빠졌다. 당연히 자식으로 나왔던 고경표와 김설에 대한 애정 역시 누구보다도 컸다. 

"설이는 제가 정말 키웠죠. 현장에 있을 때는 제가 늘 데리고 있었어요. 나이답지 않게 영리하게 연기도 정말 기가 막히게 해요. 요즘도 제가 보고 싶을 때마다 영상통화 걸어요. 근데 설이가 자꾸 끊더라고요. 하하. 경표는 나중에는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나중에 경표가 대학에 입학했다고 말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평소보다 더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촬영 막바지이기도 했고, 경표도 많이 울더라고요. 경표는 저 보기 싫다고 해도 제가 끝까지 볼 거예요. 너무 예쁜 친구죠."


배우 김선영이 최근 뉴스1스타와 만나 tvN '응답하라 1988' 촬영 당시 에피소드를 말했다. © News1star/ 권현진 기자


중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우연히 연극 연출을 하게 된 그날부터 김선영의 꿈은 배우였다. 무대가 주는 환희는 어린 소녀에게 벅찬 감독으로 다가왔다. 무명의 터널은 생의 곤궁함으로 다가왔지만 꿈을 포기해야 할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중학교 때 반 실장이었는데 졸업하려면 연극하나를 만들라고 하셨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배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배우로서의 삶이 늘 화려한 건 아니잖아요.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죠. 뭐 지금도 그렇게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힘든 순간을 견뎌야죠. 그게 사는 거잖아요. 힘들면 힘든 대로 고통스럽게 살아아죠. 연기도 그렇게 해요."

김선영은 자신의 인생의 화도를 사랑이라도 주저 없이 말했다. 그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게 연기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 속에서 나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연기의 힘이고 그런 배우가 되는 게 내 연기의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응팔'에서 가장 큰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준 이들은 꼽자면 김선영, 라미란, 이일화라는 쌍문동 아줌마의 조합이다. 이들은 각자의 삶의 결을 고스란히 내보이며 쌍팔년도 속 이웃들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김선영은 자신과 라미란, 이일화의 조합을 두고 '쌍문동 태티서'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너무 좋다. 최고의 조합 아니냐. 그 별명 정말 마음에 들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배우 김선영이 최근 뉴스1스타와 만남을 가졌다. © News1star/ 권현진 기자

"일화 언니는 극 중에서는 성동일 오빠한테 소리도 지르고 하는데 그런 모습이 사실 전혀 없어요. 가식이 아니고 정말 여성스러움이 몸에 배어있죠. 굉장히 조용하고 부드럽고 친절해요. 미란이 언니도 남편에게 소리지르고 때리고 하는 스타일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말도 조근조근하게 하고 평온한 사람이에요. 언니들과 있으면 늘 빵빵 터져요."


신원호 감독은 '쌍문동 태티서'에서 최고의 케미를 주문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골목 평상에서 만나 콩나물을 다듬는 이웃의 정겨움, 시간으로 채울 수 없는 케미는 서로의 대한 애정과 노력으로 이뤄졌다.

"첫날 촬영이 언니들과 수다를 떠는 장면이었어요. 미팅 포함해서 두 번 정도 만났죠. 오래된 사이고 엄청 친한 관계를 표현해야 하는데 감정 잡기가 어려웠어요. 연기에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 걱정했죠. 촬영을 마지고 미란이 언니가 먼저 같이 밥 먹자고 하더라고요. 너무 고마웠어요. 선배가 먼저 나서서 잡아주고 이끌어줘서 한결 편하게 친해질 수 있었어요."

드라마를 촬영하며 서먹했던 만남은 어느새 절친 이상의 관계를 형성했다. 김선영은 "마지막 골목에서 이사하면서 헤어질 때 정말 많이 울었다. '좋은 사람 만나 좋은 세월만 보내고 간다'는 대사야말로 내 이야기였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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