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호, 주인공이 아니어도 시선이 가는 배우(인터뷰①)
주인공이 아니어도 시선이 가는 배우가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할 때 나는 특유의 빛이 있다. 배우 윤소호가 그렇다. 무대에서 윤소호는 쉼 없이 연기하며 캐릭터의 감정을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쓴다. 그는 조금씩, 서툴지만 천천히 자신 만의 빛을 내고 있다.
윤소호는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로 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레미제라블'은 18세기 프랑스혁명 이후 부조리한 사회를 장발장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극중 마리우스는 혁명을 부르짖으며 친구들과 함께 투쟁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 첫 눈에 반한 여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순수 청년이다.
"뮤지컬 '킹키부츠'를 하고 있을 때 '레미제라블' 오디션 제의를 받았어요. 저와 어울릴 만한 캐릭터가 있는데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묻더라고요. 그게 마리우스였죠. 사실 앙졸라로 오디션을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라며 말리더라고요.(웃음) 공연을 볼 때 앙졸라 연기가 굉장히 임팩트 있었거든요. 다행히 오디션 결과가 좋아서 이렇게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배우 윤소호가 '레미제라블'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 News1star/레미제라블 코리아
"원작 소설을 읽고 영감을 많이 얻었어요. 공연과 달리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관계가 상당히 디테일하게 다뤄져요. 마리우스가 왜 혁명하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었는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등 공연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책을 통해 납득할 수 있었죠. 그런 부분을 주로 참고했어요."
윤소호는 "공연에서는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만나는 순간이 아주 짧은 찰나로 그려진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첫 눈에 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운명적 만남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원작에서는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늘 지켜보고, 그가 사라졌을 때 그리워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랑의 마음을 키우는 모습이 세세하게 표현돼 있다.
"마리우스가 눈치가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작품 안에서 다른 역할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 확실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성질이 매우 강해요. 반면 마리우스는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죠. 저 역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론은 원작자가 작품을 만들 때 마리우스 캐릭터를 그렇게 만든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거죠."
배우 윤소호가 코제트와 혁명 사이서 고민하는 마리우스의 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 © News1star/레미제라블 코리아
극중 마리우스는 코제트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는 혁명을 다짐했던 형제들을 두고 코제트와 떠날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도 잠시, 다시 혁명 무리에 합류해 투쟁을 불사른다. 윤소호는 "그 부분이 정말 짧게 그려진다. 원작에서 참고한 것 중 크게 영향을 받은 게 있는데 바로 마리우스의 아버지가 군인이었다는 것"이라며 "극중에는 그러한 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것을 베이스로 삼고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윤소호가 원캐스트의 고충을 토로했다. © News1star/레미제라블 코리아
"코제트와 함께 떠나지 않은 것은 그가 왜 혁명에 가담했는지 잊지 않고 초심을 찾아간 것이라 생각해요. 앙졸라를 비롯해 친구들을 택한 것은 혁명을 선택한 것과 같아요. 마찬가지로 그들과 코제트 사이에서 방황한 것은 혁명과 혁명을 방해하는 것들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볼 수 있죠. 마리우스는 카페 안에서 동료들과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던 그 날들이 머릿속에 항상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한 것 같아요."
윤소호는 원작을 읽고 캐릭터의 감정을 그려나갔다. 연습기간을 거쳐 자신만의 마리우스를 오롯이 그려내며 기대 이상의 결과를 일궈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다른 고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미제라블'은 주인공 장발장과 자베르를 제외하고 전 배역이 원캐스트로 진행된다. 그간 윤소호는 더블, 트리플 이상으로 진행되는 공연에 주로 출연해 왔다. 이틀에 한 번, 혹은 3일에 한 번 공연하는 시스템이 몸이 맞춰진 상황에서 매일 무대에 오르는 것은 또 다른 난관으로 다가왔다.
"체력을 관리하는 게 힘들어요. 매일매일 무대에 오르는 것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죠. 지금이야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많이 적응됐지만, 연습기간, 리허설, 공연 올리기까지 힘들었던 시간이 많았어요. 트리플 이상의 공연을 할 때는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당장 내일 공연을 또 해야 하는 입장이니깐 정신, 체력적으로 그때와 많이 다르더라고요. 오직 '레미제라블'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매일 무대에 오르는 것은 힘든 만큼 윤소호에게 많은 것을 안겨줬다. 배우들과의 끈끈한 호흡이 대표적이다. 매일 무대에 오르니 호흡이 안 좋을 수가 없다. '레미제라블'은 아역부터 제작진까지, 누구하나 허투루 임하지 않는다. 높은 퀄리티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방면에서 지원이 이뤄진다. 윤소호는 "'레미제라블'은 배우들의 호흡이 좋지 않으면 안 되는 공연"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원캐스트는 높은 완성도를 바탕으로 진한 감동을 자아내는 기적을 이뤘다.
"다치면 안돼요. 다치면 더 큰 문제가 생겨요. 이건 정말 원캐스트로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다치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죠. 제가 다치면 그 자리에 스윙하는 배우가 서야 하는데 그러면 그들과 또 호흡을 맞춰야 해요. 정말 서로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물론 다치고 싶어서 다치는 건 아니지만 말이에요. 그래서 늘 조심하고 있어요."
'레미제라블'은 어두운 시대를 반영하듯 무대 조명도 다른 공연에 비해 어둡게 사용된다. 매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지만 배우들은 서로 조심하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가뜩이나 조명이 어려운데 위험한 전쟁신도 많으니 배우들로서는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초반에 바닥 레일에 무릎을 쓸려서 찢어진 적이 있어요. 공연을 마치고 보니 바지가 칼로 찢어진 것처럼 나가 있더라고요. 병원에 가서 꿰매고 다시 공연을 했어요. 무릎을 굽히고 달리는 장면이 많아서 걱정이 됐는데 역시 사람은 적응을 하는 동물인 것 같아요. 적응되니까 또 할만 하더라고요. 다른 배우들도 뼈가 부러진 상황이 아니면 다들 악으로 버티면서 하고 있어요. 그게 또 '레미제라블'의 힘인 것 같아요."
배우 윤소호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았다. © News1star/레미제라블 코리아
"개인적으로 피플송을 좋아해요. 퓨이 역을 맡은 김이삭 배우가 타워에 올라가고 다른 배우들은 밑에서 화음을 넣죠. 퓨이가 빨간 천을 보여주며 멋지게 솔로를 부르는 장면인데 밑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감동적이에요. 보고 있으면 울컥해요. 다른 배우들도 그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윤소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통해 '레미제라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레미제라블'을 접하길 희망했다. 그것이 꼭 뮤지컬 무대를 통해서만은 아니었다. 원작 소설과 영화를 통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길 바랐다. 그는 "'공연을 꼭 보세요'가 아니다. 이렇게 좋은 공연이 있는데 못 보면 아까울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모든 질문은 '기승전레미제라블'로 통했다. 작품을 향한 그의 애정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대구에서 시작된 '레미제라블' 공연부터 서울 공연까지, 장작 5개월여의 시간동안 '레미제라블' 무대에 올라 마리우스로 살아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관객과 만나며 자신의 부족함을 일깨워주는 질타를 받으며 조금씩 성장했다. 누구보다 착실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내일을 기대해 본다.
뉴스1스타 백초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