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제훈의 스크린 안팎, 시네마틱한 순간들 (인터뷰①)
배우 이제훈의 스크린 안팎은 시네마틱한 순간들로 둘러싸여 있다. 매 순간이 그에겐 영화적인 순간이라 여겨질 정도로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를 규정 짓기 어려워보였다. 그만큼 인터뷰 내내 그가 사용한 영화에 대한 동경과 낭만의 언어는 일상의 수식어가 됐다. 촬영 스케줄이 없는 날엔 영화를 감상하기도 하고, 고전 영화의 정취에 빠져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고전 영화에 흠뻑 취한 날은 그 작품에서 연기하는 자신을 상상하곤 한다 말했다. 옛 향수를 자극하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좋아 휴대전화 대신 유선 전화기를 사용하고,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대신 CD를 구입하는 것을 선호하는 그에게 고전 영화의 취향이 집약된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감독 조성희)은 애착이 가는 작품일 수밖에 없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좋아했던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다. 배트맨의 탄생 신화와 맞닿아 있던 트라우마를 지닌 홍길동이라는 인물에 금세 매력을 느꼈다. 군 제대 후 어느새 서른을 넘긴 자신에게, 청년의 경계에 미치지 못한 소년성을 기대해 캐스팅했을 것이란 영리한 분석도 내놨다. 조성희 감독의 CG 구현에 있어서 카메라 동선을 의식하기도 하고, 연기 경험이 전무한 아역 배우와 연기 호흡을 맞추기도 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도 뒤따랐다. 현실 보다 만화에 가까운 듯한, 감정 인지 능력이 결여된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연기 역시 쉽지 않았지만 도전을 감행했다. "안정적인 노선 만을 간다면 경험이나 추억이 없으니까 인생도 단조로워질 것 같다"는 게 이유다. 시네마틱한 순간을 위한 선택,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은 역시 이제훈다운 선택이었다.
배우 이제훈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관련 인터뷰에서 작품에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 News1star / CJ 엔터테인먼트 Q.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이 어땠나. CG가 많은 작품이라 배우들도 결과물이 궁금했을 것이다. 그리고 군 제대 후 첫 스크린 복귀작으로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A. 한국 영화에서 독창적이고 새로운 비주얼의 영화가 나왔다고 반겨주셔서 다행이었다. 조성희 감독님을 보고 영화에 출연했는데 완성작을 보고 나니까 출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감독님의 전작인 영화 '남매의 집', '짐승의 끝'을 보면서 저런 세계관을 가진 감독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 싶었다. 대체할 수 없는 감독님 만의 아우라와 독특한 색깔이 있더라. 그래서 시나리오를 봤을 때도 만화적인 느낌들을 어떻게 영화에 녹여내실지 궁금했다. 감독님은 촬영장에서 본인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설명하곤 한다. 거기에서도 이미 반했지만 완성작을 보니 더 만족스러웠다.
Q. 홍길동은 한국 히어로 영화에선 없는 캐릭터인 것은 분명하다. 조성희 감독이 안티 히어로인 홍길동 역에 이제훈을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A. 이전 출연작이었던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과 조성희 감독님이 잘 아시는 사이이시다. 감독님은 고전 소설에서의 홍길동의 어떤 이미지나 캐릭터를 차용해서 변주해 보여주시고 싶어하셨던 것 같다. 홍길동이 정의의 편에 서서 악을 무찌르겠다는 캐릭터가 아니라, 복수의 대상을 찾았다가 우연하게 악을 만나게 되는 설정이지 않나. 그러다가 그 과정에서 원수의 손녀들을 통해서 변모해 나가는 모습을 나를 통해 창조해내고 싶어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이 나를 보고 '건축학개론' 승민이 모습을 떠오리시는데 그런 모습에서 어둡거나, 날카로운, 어둠에 갇혀 있을 것 같은 소년의 이미지를 끌어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Q. 그간 이제훈이 연기했던 '건축학개론' 승민부터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홍길동까지, 대개 캐릭터가 아이들과 친화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A. 대개의 캐릭터들이 아이들과 친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긴 하다. 아이들과도 본격적으로 연기한 적도 이번이 처음이다. 어른이지만, 사실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의 모습들을 보여주려 했다. 아이들에게 무섭게 대하면서 '죽여버리겠다', '시끄럽다'와 같은 대사를 한다. 나중엔 점점 아이들과 소통이 되면서 마음이 열리고 변화돼 가는데 그런 부분에서 피터팬의 느낌이 나지 않나. 미장센에 있어서 느와르가 강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홍길동은 왠지 시가를 피울 것 같지만 캐러멜을 먹는다. 그런 부분이 재미있는 것 같다.
배우 이제훈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관련 인터뷰에서 홍길동 캐릭터를 만들어갔던 당시를 회상했다. © News1star / CJ 엔터테인먼트 Q. 이번 작품에선 유독 내레이션이 많았다. 배우로서 홍길동의 감정선에 대입하기엔 어땠는지 궁금하다.A. 내레이션을 많이 하는 캐릭터가 한국영화에선 많지 않다. 대사가 많아서 쉽진 않았지만 즐겁기도 했다. 또 홍길동이 거짓말을 많이 하지 않나. 위기를 타개하려 상황마다 거짓말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그게 홍길동의 독특한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웃음) 복수의 대상을 만났을 때 '어머니를 죽인 복수의 대상 앞에서 용서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하며 연기했던 것 같다. 쉽진 않았지만 상황마다 감정에 충실하려 했다. 선하고 멋지고 싸움도 잘하는 히어로는 사랑받겠지만 이런 캐릭터가 과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비호감 캐릭터로 전락하진 않을까 고민이 많기도 했다. 홍길동에게 관객들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연기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Q. 홍길동과 이제훈 사이에 접점이 있을까.A. 홍길동처럼 겁이 없는 건 같은데 그 대상이 조금은 다르다. 겁이 없다는 게 번지점프와 같은 것을 할 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험에 있어서 호기심에 따라 움직인다는 의미에 가깝다. 연기도 잘할 수 있는 것만 선택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내던지고 두려움을 이겨내려 용기를 내곤 한다. 스스로가 감독의 도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험이나 추억이 없으니까 인생도 단조로워질 것 같거든. 그래서 나를 더 막 내던지려고 한다.
Q. 아역배우들과의 연기 호흡이 가장 호평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동이 역의 노정의 말순 역의 김하나와 호흡은 어땠나. '건축학개론' 당시에도 애드리브로 살려낸 장면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애드리브로 살려낸 장면이 있었나.A. 연기를 할 때 대사와 리액션에 있어서 캐릭터에 맞게 잘 표현하려 준비해 갈 때가 많은데 아이들과 연기할 때는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연기할지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 크다. 엉뚱한 반응을 하니까 당황스럽더라. 이렇게 리액션을 한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과 연기를 하면서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을 나도 표현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차 안에서 '내가 좋은 사람 같아 보이냐, 죽여버린다'는 대사를 하는데 말순이가 캐러멜을 내미니까 할 말이 없더라.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진 것 같단 느낌도 들더라. (웃음) 악랄한 생각을 하며 연기를 해야 하는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쳐다 보니까 나도 '에라, 모르겠다'며 연기했다. 그 부분은 계산된 부분이 아니라 덕분에 그런 리액션이 나온 것 같다.
배우 이제훈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관련 인터뷰에서 아역배우 김하나와의 연기 호흡을 회상했다. © News1star / CJ 엔터테인먼트 Q. 특히 홍길동과 말순이의 케미스트리가 인상 깊었다는 평이 많다. 김하나의 경우 연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A. 노정의는 이미 이전에 여러 작품 경험이 있어 촬영이나 연기는 어느 정도 능숙한 친구였다. 말순이 역을 맡은 김하나는 감독님이 어떤 이미지만 보고 캐스팅을 해서 데려온 친구였다. 수많은 스태프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더라. 나도 처음 연기할 땐 긴장돼서 벌벌 떨며 연기했는데 이 아이는 오죽할까 싶더라. 그래서 감독님과 내가 말순이를 적응시키려 같이 놀면서 과자도 나눠먹고 놀아줬다. 현장에서 감자, 고구마도 나눠먹으면서 어린 시절 돌아간 것처럼 해맑게 지내기도 했다. 사악하고 못되게, 귀찮다고 짜증을 내야 해서 촬영이 끝나면 미안하다고도 했다.
Q. 이번 영화에선 유독 CG가 많았다.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A. 배경 자체에 CG를 많이 구현하려 하셨다. 연기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거의 없었고 감독이 구현하려는 그림에 따라 카메라 동선과 조명 위치를 잘 찾아가야 하는 어려움은 있었다. 쉽지 않았지만 그 역시 알맞게 표현이 됐을 때 홍길동 캐릭터가 극대화되더라. 그래서 모니터하며 꽤나 만족스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잘 맞춰야 했던 부분을 잘 해냈을 때 희열이 느껴지더라.
Q.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A. 초반 시퀀스가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홍길동이 초반에 악당 3명을 만나 유인한 뒤 잔인하게 처단을 하는 이 장면은 본래 수위가 더 높았다. 원래 더 잔인하고 악랄했다. 손가락을 자르는 부분은 직접적으로 표현이 됐지만 수위 조절 때문에 편집됐다. '이 홍길동님에게 덤빈 벌이다'라는 대사는 만화적이기도 하다. 어떻게 잘 소화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유치하다고 하면 영화 톤앤 매너에 동의하지 않고 가는 게 될 수 있으니까 그런 느낌이 들지 않도록 연기하는 게 중요했다.
배우 이제훈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관련 인터뷰에서 히어로에 대한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 News1star / CJ 엔터테인먼트 Q. 남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누구나 영웅이 되길 꿈꾸지 않나. 그런 판타지를 어느 정도 충족시킨 부분이 있었나.A. 나도 어린 시절엔 그런 상상을 많이 하곤 했다. (웃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본래 좋아했다. 배트맨은 부모님이 죽는 모습을 보고 악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당에게 맞서 싸운다. 갇혀 있는 인물이면서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런 부분이 홍길동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홍길동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게 반가웠다. 배트맨도 3부작인데 홍길동도 다음 편이 제작돼서 보다 스펙터클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영화가 개인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비긴즈'에 해당된다면, 다음 이야기는 그 속에 더 깊숙이 들어가 그들을 심판하고 처단하는 홍길동의 모습이 그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버지 세대와의 갈등, 아버지와의 직접적인 대면을 다음 이야기에서 그려보고 싶다.
Q. 영화에 깔린 클래식한 분위기도 특별했다. 이제훈이 선호하는 취향과도 맞닿아 있던 부분이라고 들었다. A. 그렇다. 디지털 시대이고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 뿐더러 더 새롭고 편한 걸 찾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옛날 것들이 더 그리워지고 그것들을 더 찾게 되더라. 요즘 사람들은 스트리밍을 선호하다 보니까 CD를 구입하는 것에 대해 공감을 안 하더라. 난 외려 CD에 더 관심이 간다. 전화기를 사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미국 옛 영화에서의 향수를 느껴서인지 유선전화기를 사용한다. (웃음) 직접 다이얼을 돌리는 유선전화의 클래식한 느낌이 너무 좋다. 휴대전화는 오래 쓰면 뜨거워지더라고. (웃음) 유선전화는 아무리 오래 통화해도 안 뜨거워지고 전화하는 듯한 느낌도 난다. 자동차 역시 클래식 카가 좋다. 홍길동의 차도 곡선형이 아니라 각이 살아 있는 옛날 디자인이다. 그렇게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게 마음이 간다.
Q. 클래식한 취향을 선호한다면 영화 취향은 어떤가.A. 영화는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특히 옛날 영화를 많이 찾아본다. '시민 케인'이나 '7인의 사무라이' 등 옛 작품을 보며 '내가 만약 저 시대에 살았다면 저런 옷을 입고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번에도 트렌치코트, 중절모 패션을 보여줬는데 한국영화에서 그렇게 입고 나오기 힘들지 않나. 미국 고전 영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하게 돼 좋더라. 옛날 배경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영화적인 냄새라 해야 할까, 시네마틱한 부분이 더욱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다.
배우 이제훈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관련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 취향에 대해 설명했다. © News1star / CJ 엔터테인먼트 Q.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면서 군 제대 후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전에는 자신의 사생활 때문에 작품의 캐릭터가 영향을 받을까 우려된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A. 이전에는 내가 예능에 나오면 괜히 더 어색해지고 재미없어지지 않을까 싶었고 외려 그게 예능에도 독이 될 것 같았다. 대중에게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부분이 어렵고 조심스럽기도 했어서 더 소극적이게 된 부분도 있다. 그런데 굳이 폐쇄적으로 갇혀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제는 시청자들이 작품은 작품대로 예능은 예능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리고 의도적인 웃음과 재미보다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기대하는 것 같더라. 제작진도 있는 모습 그대로를 봐주면서 재밌는 요소를 찾아가려고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대중이 나를 궁금해 하거나 반겨준다면 좀 더 편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다가가도 좋지 않을까 싶다.
Q.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후속을 기대해도 될까.A. 이번 작품은 한 인물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다음 얘기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여기서 마무리되면 아쉬운 느낌이 있어서 속편도 진행됐으면 한다. 관객 분들의 반응이 좋으면 다음 이야기도 잘 진행되지 않을까. 감독이나 나는 속편 제작 의지가 강하지만 후속작은 관객들의 선택에 달린 것 같다. 관객이 이번 영화를 즐겨주신다면 감독이나 나는 다음 이야기를 함께 할 준비가 돼 있다. 후속작에선 광은회를 완전하게 처단하는 것까지 깊숙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Q.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을 기점으로 이제훈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A. 앞으로는 촬영 현장에서 제작 환경이나 연기에 있어 더 잘 화합해 만들어가려 한다. 이젠 정말 좋은 분위기 속에서 작업해야 작품도 잘 된다고 믿어서 스태프들과 소통하려 더 전면에 나서려고 노력한다. 이전에는 연기에만 집중하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면 이젠 더 밝고 긍정적이게, 즐겁게 일하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그건 내 위치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로 인해 현장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걸 느끼곤 하니까.
뉴스1스타 장아름 기자